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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박경민 (andpilotpilot@nate.com) 추천: 286, 조회: 6402, 줄수: 21, 분류: Etc.
대구의 자랑스러운 인물과 비석
이 서 (李(1732~1794)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계호(季浩) , 대구판관 역임,

        

  부친은 주진(周鎭)이며 이조, 병조, 예조, 형조, 공조판서를 역임하였기에 1759년(영조35년) 문음(門蔭)으로 입사(入仕)하였습니다.

 그는 1776년부터 2년 6개월 대구판관으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들었습니다. 가장 큰 업적은 대구를 현재의 모습으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778년 이전의 신천은 지금과는 달리 新川(신천)의 舊水路(구수로)는 龍頭山(용두산) 밑에서 舊 曉大(효대)앞-->水道山(수도산)-->東麓(동록)-->半月堂(반월당)-->東山病院(동산병원)-->達西川(달서천)으로 흘러서 琴湖江(금호강)에合流(합류)하였는데 이 물줄기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전 시가지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극심하였습니다.

  그러던 때 1776년(정조 즉위년) 그가 대구판관으로 부임하여 주민들의 침수 피해를 염려하여 1778년 대구중심부를 흐르던 물줄기를 주민 부담없이 사재를 털어 현재의 신천으로 수로를 돌리는 공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그후부터는 홍수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감동한 주민들은 이판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중국 송나라 소식(蘇軾)이 항주자사로 있을 때 축조한 제방을 소공제(蘇公제)라 이름한 것을 본따 이공제라 칭하고, 물길을 돌려 새로 만든 내를 『새내』또는 『신천(新川)』이라 불렀습니다.

1797년에는 이공제비를 세우고 매년 음력 1월 14일 향사를 올렸습니다.
(※이공제비는 신천동로 상동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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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0(09:33) from 210.103.3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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