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삼족당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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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영곤 추천: 132, 조회: 746, 줄수: 87, 분류: Etc.
Re: 군수공파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김정일 wrote:
> 안녕하십니까!
>
> 저는 삼현파 24세손 수자 돌림을 사용하는 부산에 사는 김정일이라고 합니다.
>
> 물론 족보에는 일수라고 올려져 있고요. 나이는 39세입니다.
>
>
> 저희 조상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
>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기로로는
>
> 5대조 할머니께서 밀양에 사시다가 울산시 울주군으로 고조 할아버지 한분만 보시고 종과 함께 이주를 하셨다고 합니다.
>
> 대단히 잘 살았었는데, 조상님 중 산소를 옮기면서 집안에 화를 불러 계속적으로 어른들께 돌아가셔서 할머니께서 고조부만 모시고 고향을 등지고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
> 이후, 지금도 밀양 표충사 근처에 묘사를 지내러 가고 있고요.
> 지금 무었 때문인지 말은 안하는데.. 주민 중에 한 부부께서 계속 산소를 보아주시(벌초 등)는 분도 계십니다.
>
> 어릴적에 할아버지께서 술드시면 "청도 백곡 김가"라고 자주하셨습니다.
>
> 저희 조상분들에 대해서 더 알고 싶습니다.
>
> 아무턴 이런 홈페이지가 있어 너무 반갑고해서 글 남겨 봅니다.
>
> 감사합니다.

영곤

정일님의 방문, 반갑습니다.
젋은 나이에 혈통과 문중의 역사에 관심을 갖아주니 칭찬이 앞서는군요.
군수공 諱건파(諱:휘=돌아가신 분을 높여 이르는 존칭) 는 판도판서공 諱관파(삼현파)의 5세 되시는 철효공 諱극일 할아버님의 6 아드님중에 장자되시는 분으로 영광군수를 지내셨다 하여 군수공으로 불리우셨습니다.
짧은 지면이라 몇가지만 올리고 그외의 것은 스스로 찾아서 밝히는 즐거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김현성(金玄成)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자는 여경(餘慶), 호는 남창(南窓)이다.
중종 37년(1542년)에 태어난 그는 삼현파의 중조이신 판도판서 문정공 諱관의 10세이며, 절효공 諱극일은 그의 5대조이다.
중조)관-子)문숙-子)항-子)서-子)극일-子)건-子)태석-子)인손-子)언겸-子)현성
어릴 때부터 문학과 행실과 정의감이 뛰어났다.  그는 출생한지 두 살도 못 되어 벽상에 있는 글자를 보고 손으로 똑같이 그리기를 오래 하니 보는 사람이 기이하게 여겼다.
다섯살 때 소학을 읽고 그 뜻을 알며, 글씨를 쓰고 보는 일 외에 다른 놀이는 하지 않았다 한다. 15세에 경서와 사기에 통달하였고, 명종 16년 20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명종 19년, 23세에 이율곡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여 사자관( 조선 시대 관직 승문원 규장각의 벼슬로 문서를 정사하는 일을 봄)에 제수되어 시문과 필법을 익혔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51세로 비변사 사랑이 되어 임금의 대가를 호위하고,
이듬해 재령군수, 인천부사, 공주목사가 되었다가 선조 35년에 양주목사,여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선조 41년 왕의 옥첩(황실의 계보)을 써서 그 노고로 특별히 가선대부동지돈녕부사(종 2품)에 올랐다.
1617년 광해 정사년에 평양에 있는 기자전 비문과 여수에 있는 이 충무공의 수군대첩 비문, 권율(權慄) 장군의 행주산성 대첩 비문을 쓰니, 당대를 대표하는 명필로서 취헌금 박팽년(朴彭年), 우계 성혼(成渾), 퇴계 이황(李滉) 등과 더불어 [필원목록(문필가와 명필들의 이름을 집록한 책)]에 올랐다.
그는 성품이 우애있고 덕행과 문장 필법이 당대에 높이 평가되어 일찍이 율곡(李珥)은 공을 가리켜 마땅히 정승 자리에 앉을 분이라 극찬했으며, 성우계도 가리켜 고인 중에나 찿아 볼 수 있는 분이라 했다.
그는 이 무렵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과 조선 중종 때의 유여림(兪汝霖)의 신도비문을 써서 당대의 명필로서 자리를 굳혔다.
광해군 13년 10월 15일에 타계하니 수가 80세 이었으며, 당시 최대의 석학 이수광[지봉유설의 지은이]이 치전문을 쓰고 신도비문을 지었다.
조정에서는 우의정을 증직하여 그의 생전의 공훈을 기렸다.
그는 평소 청렴결백하여 돌아가실 때 매우 가난하여 장례를 치를 수 없었는데 고을 사람들이 그 청백함을 칭송하고 돈을 모아 장례를 치뤘다고 한다.

자 여경(餘慶)
호 남창(南窓)
생졸년 1542 (중종 37) - 1621 (광해군 13)  
시대 조선 중기
본관 김해(金海)  
활동분야 예술/체육 / 화가 / 선비 서화가
과거 및 취재 [문과] 명종(明宗) 19년 (1564) 갑자(甲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위
[생원진사시] 명종(明宗) 16년 (1561) 신유(辛酉)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47위
[상세내용]
김현성(金玄成)에 대하여
1542년(중종 37)∼1621년(광해군 13). 조선 중기의 선비 서화가. 본관은 김해. 자는 여경(餘慶), 호는 남창(南窓). 목사 언겸(彦謙)의 아들이다.
1564년(명종 1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교서관정자(敎書館正字)와 봉상시주부(奉常寺主簿)·양주목사 등을 거쳐, 1617년에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시·서·화에 두루 능하였는데, 그림보다는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시에 능하였다고 한다. 글씨는 조선초에 유행하였던 우아하고 균정된 모습을 지닌 송설체(松雪體)를 따랐다.
현재 전하는 그림은 없고 서예 유작으로 행서로 쓴 〈주자시 朱子詩〉가 남아 있다.
또, 금석문으로는 〈숭인전비문 崇仁殿碑文〉·〈이충무공수군대첩비문 李忠武公水軍大捷碑文〉·〈조헌순의비문 趙憲殉義碑文〉·〈신숭겸충렬비문 申崇謙忠烈碑文〉·〈정언유격묘비문 正言柳格墓碑文〉 등 다수의 작품이 전하고 있다.
저술로는 《남창잡고 南窓雜稿》가 있다.
[참고문헌]
南窓雜稿   芝峯集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조선왕조실록
선조 8권, 7년(1574 갑술 / 명 만력(萬曆) 2년) 4월 16일(경신) 1번째기사
경회루에서 상이 2품 이상 문무관을 시험하다
경회루 밑에서 상이 친히 2품 이상의 문무관(文武官)을 시험 보였는데 시관(試官)은 10원이었다. 묘시(卯時) 정각에 상이 전좌(殿坐)하니, 우상 노수신 이하가 당초에 경회루 대문 안에 앉았다가 이 때에 차례대로 입시했다. 문신(文臣)은 통정 대부(通政大夫) 이하에게 글을 시험 보이고, 무신(武臣)은 2품 이하에게 관혁(貫革)을 5순(巡)씩 쏘는 것을 시험 보였다.
우상 노수신이 대제학(大提學)·제학(提學)과 부제학 유희춘(柳希春)을 불러 출제(出題)를 의논했다. ‘기선악(幾善惡)’·영소(靈沼)’·‘유예(游藝)’ 세 가지 글제로 품하자 상이 ‘유예’에다 낙점(落點)했는데, 김귀영(金貴榮)이 낸 것이었다. 상이 점심을 먹기 위해 환궁(還宮)하고 입시한 종실(宗室)과 재상들에게 선반(宣飯)을 내렸는데 신(臣) 등도 먹었다.
오시(午時) 정각부터 거둔 시권(試券)을 세 군데에 나누어 고사(考査)했다. 윤담휴(尹覃休)가 이하(二下)로 장원이 되고 김현성(金玄成)이 삼상(三上)으로 차석이 되었는데, 실지는 김현성이 지은 것이 사기(詞氣)로 치면 제일로 해야 마땅했다. 유시(酉時)에 무신들의 활쏘기가 끝나 파하고 물러났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21책 299면

본싸이트 상단의 가계도 보기, 세계도/ 등을 참조하시고, 그외 자료로는
http://kr.blog.yahoo.com/enaksehd8
http://www.garak-seoul.or.kr/
http://www.garakkim.net/
http://www.kimheakim.com.ne.kr/index.html  등등을 찾으시고,

그 외의 방법으로는,
제적등본에 기록된 증조부, 조부, 부친의 고향에 가서 그 곳의 원로를 찾아 수소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친척 중에 보첩을 모셨거나, 보학에 밝으신 분, 소속된 문중을 아신다면 그 곳을 찾아 알아보시는 방법도 있겠군요.
님의 노력에 좋은 결과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요.
김해김씨 삼현파 한림공諱용 호남문회 송촌문중 14세(파-22세 . 가락-70세) 寧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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