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삼족당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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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영곤 추천: 58, 조회: 310, 줄수: 40, 분류: Etc.
Re: 궁금해서요..
김지연 wrote:
> 족보는 예전에 할아버님의 형님이 잃어 버리셨다 그러고..
> 사실 저도 별로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 약혼자가 어쩌다 보니 동성동본에 파까지 같은지라..
> 혹시 8촌간이면 곤란하다고 해서요.. ㅠㅠ
> 한번 알아 봐야 할 것 같아서요..
>
> 저의 증조부님의 성함은 김 학 수 이시고
> 조부님의 성함은 김 상 도
> 아버지의 성함은 김 부 환 이십니다..
> 그럼 저는 몇대가 되나요/
> 항렬도상으로는 좀 헷갈려서요..
>
>
영곤
지연님의 싸이트 방문을 환영합니다.
지연님이 제시한 자료에 으하면 가락 김해김씨 삼현파 27세<<가락 75대-廷(정)在(재)○ 항렬>>로 판단됩니다.

판도판서공(版圖判書公) 관(管)파 = 삼현파
김관(金管) : 김해인 자(字)는 희범(希範) 호(號)는 정성헌(靖醒軒). 본관은 김해(金海)이니 고려말(高麗末)의 문신(文臣)이다. 초명(初名)은 관(館)은 왕의 하사명(下賜名)이라 한다.
그는 고려(高麗)의 고종(高宗) 37년(1250년)에  찬지정자(參知政事) 경손(慶孫)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出生)시 마을앞의 개울에 오색창란한 무지개가 하늘을 향해 뻔쳐 올랐었다고 한다. 과연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범(非凡)하였으나 8세에 입학(入學)하여 한번 들은것은 이를 모두 깨우치니 스승을 놀라게 하였고 제반 행실(行實)이 단정(端整)하여 다른사람의 모범(模範)이 되었다. 원종(元宗) 7년 (1266년) 그의 나이 17세로 명경과(明經科)에 급제(及第). 교서랑(校書郞)이어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다. 이때 안향(安珦)이 그의 재주를 높이사서 친교(親交)를 맺으니 두사람은 틈틈히 만나서 서로 학문(學問)을 논(論)하며 남다른 교분(交分)을 이어 갔다.
원종(元宗) 11년(1270년) 삼별초(三別抄)의 난(亂)에 안향(安珦)이 강화(江華)의 적중(敵中)에 억류되니 그는 온갖 지혜(知慧)를 다해 안향(安珦)을 구출(救出)하였던바 왕(王)이 감동(感動)하여 그에게 상을 내렸다. 7년뒤 충렬왕(忠烈王) 3년 (1277년)에 판도좌랑(判圖佐郞)에 이어 감찰(監察)어사(御史), 국자(國子)사업(司業)에 올랐다.
충렬왕(忠烈王)15년(1289년) 그는 안향(安珦)과 함께 충선왕(忠宣王)을 호종(扈從)하여 원(元)에 가서 연경(燕京)에 머무는 동안 주자전서(朱子全書)를 보고, 이를 안향(安珦)과 함께 수록(手錄)하여 왔으니 이것이 우리나라에 주자학(朱子學)이 들어온 시초(始初)가 된다. 그는 충렬왕(忠烈王) 16년(1290년) 밀직시사(密直司事)가 되고 8년후에는 다시 충선왕(忠宣王)을 따라 원(元)을 다녀왔다. 충렬왕(忠烈王) 27년(1301년) 도성(都城)에 불이 나서 궁전(宮殿)이 온통 불바다가 되었을때 그는 일신의 위험(危險)을 돌보지 아니하고 화염속에 갇힌 왕(王)을 구출(救出)하였다.
충혜왕(忠惠王) 복위 4년(1343년)원(元)의 사신(使臣)이 와서 고려(高麗)의 충혜왕을 붙잡아가서 (계양(계揚): 중국어 광동성(廣東省)으로 유배(流配)를 배종하였다.  이듬해 중국의 악양(岳陽)땅에서 충혜왕이 죽자 그는 원(元)의 조정(朝廷)에 나아가 자신(自身)을 인질(人質)로 하고 충혜왕의 시신(屍身)을 고려(高麗)로 보내어 장사(葬事)지내게 해 달라고 간청(懇請)하였다. 원(元)의 조정(朝廷)은 이러한 그의 충성(忠誠)에 감동(感動)하여 충혜왕의 시신(屍身)과 함께 그의 환국(還國)을 허락(許諾)하였다.
충목왕(忠穆王) 1년(1345년)그는 판도판서(版圖判書)에 궤장(궤杖)을 하사(下賜)받고 3년뒤 98세의 장수(長壽)를 누리고 파란의 생애(生涯)를 마치니 이때가 충목왕(忠穆王) 4년(1348년) 2월 이였다.
그는 시호(諡號)를 문정(文貞)이라 하고 창원군(의창군) 대산면(大山面) 저소산(楮沼山)에 묻혔으니, 지금 대산면 유등리에 묘(墓)가 남아 있다.
호(號)는 정성(靖醒), 일찌기 벼슬이 판도판서(版圖判書)·국자사(國子師)에 이르렀고, 충선왕(忠宣王) 때에 누차 왕에게 간(諫)하여 부도(浮屠:불교)를 배척하고 학교를 건설하여 유학을 진흥시키는 등 국가에 많은 공을 세웠다.
청도에 후손이 많이 살며 삼현(절효공, 삼족당, 탁영)이 배출되었다 해서 흔히 삼현파(三賢派)라고 부른다.
중조 관은 고려때 봉익대부 판도판서를 지내셨다. 판도판서 관의 후손은
군수공 건(健)파/집의공(참판공) 맹(孟)파/한림공 용(勇)파/진사공 순(順)파/녹사공 인(靭)파/진의공 현(鉉)파 로 나뉘어지며 그외에도
문민공(文愍公) 일손(馹孫)파, 삼족당(三족足堂) 대유(大有)파, 남창공 현성(玄成)파, 진사공 태일(兌一)파, 판서공 경진(景振)파, 선무랑공 적(積)파, 둔암공(김의경)파, 치오공파 등오 나뉜다.
삼현파 항렬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72대(24세) ○洙(수)泰(태),          73대(25세) 相(상)東(동)○,  
74대(26세) ○煥(환)熙(희),          75대(27세) 廷(정)在(재)○,

같은 성씨, 같은 파끼리의 혼인은 민법, 등등을 따지기 전에 두 양가집안과 두 사람에 관계된 일이라 시시비비를 따질 수는 없습니다.

이 기회에 조부나 부친과 함께 소속된 문중을 찾아 일가도 만나시고, 대제에도 참여하여 선조의 음덕을 기리는 진정한 후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해김씨 삼현파 한림공諱용 고창문회 송촌문중 14세(파-22세 . 가락-70세) 寧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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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9(08:23) from 119.77.1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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