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만나는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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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주명 (daegustory@naver.com) 추천: 367, 조회: 12462, 줄수: 45, 분류: Etc.
카레 대 자장 - 국립대구박물관
카레 대 자장

오늘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라던 우리 반 자연학습, 캠핑을 떠나는 날이다. 장소는 차로 40여분 가면 도착하는 작은 산속 마을인데, 예전에는 분교로 쓰였으나 지금은 자연학습장이다. 바로 옆에는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계곡이 있어 무더운 여름을 살짝 피하기는 더없이 좋은 곳이기도 하다. 더욱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것은 점심을 우리가 직접 해서 먹어야 한다는 사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을 두 모둠으로 나눠, 가장 맛있고 깨끗하게 하는 모둠을 가리겠다고 하며, 우수 모둠에게는 한 달간 반 청소 면제의 특권을 주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에게는 우수 모둠의 특권보다는 평소 나의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인 민주가 상대편 모둠에게 속해 있다는 것이다. 평소 늘 같이 지내는 민주이기는 하지만, 민주는 늘 나보다 한수 위에 있다. 공부면 공부, 체육이면 체육, 미술, 음악에서도 늘 나보다 잘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평소 민주의 솜씨는 내가 제일 잘 아는데 누가 나의 요리 실력을 따라 올 것인가?  

출발하기 전날, 민주네 모둠에서는 자장밥을 메뉴로 정했다는 정보원의 소식을 들었다. 모둠장인 나로서는 자장에 대적 할 수 있는 카레 밥을 메뉴로 결정하고 모둠 원들에게 각자의 준비물을 빠짐없이, 꼼꼼히 챙기고 또 챙겼다. 이제 결전의 날만 남았다.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니 역시 공기가 달랐다.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차 속에서의 에어컨 바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선생님의 주의사항을 전하는 소리는 마치 카레라이스 만드는 순서도처럼 들렸고, 계곡의 물소리는 요리대결에서의 승리를 축하하는 박수소리와도 같았다.

드디어 점심준비를 알리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각자 준비해온 대로 밥을 먼저 불 위에 올리고 다음은 나머지 재료들을 살피는데........ 이럴 수가........ 칼이 없다니....... 그럴 리 없는데, 다시 준비물 목록을 살펴보았다. 돼지고기, 감자, 양파, 당근, 쌀........ 거기에도 칼이 없었다. 순간 모둠 원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함께 민주네 모둠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우리 모둠 해결사 민호가 나섰다.

“민주네 모둠에 가서 내가 빌려 올게!”
“너라면 빌려 주겠니?”

내가 괜한 민호에게 쏘아 붙였다.
늘 합리적인 나영이가 나섰다.

“선생님께 빌리자.”
“조금 더 생각해보자.”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옆에서도 눈치 챘는지

“너희는 말로 요리하니?”
“저리 가!”

그러자 재간둥이 효진이가 해결책이라고 제시한다.
“주은아, 너 기억 안나? 저번에 박물관 현장학습 갔을 때, 예날 사람들이 주먹도끼 사용하던 장면, 재현해 놓은 사진도 있었잖아. 짐승 가죽도 벗기고 나무도 자르고....... 그때 박물관 선생님도 그렇게 설명해줬잖아. 옛날 사람들은 주먹도끼를 칼처럼 사용했다고........”
“맞다. 바로 그거야!”

밥 당번 우진이만 남겨두고 모두들 옆에 있는 계곡으로 갔다. 있을까? 어떻게 찾지? 찾는 거야, 만드는 거야? 모두들 웅성거리며 강바닥을 훑어보는데, 그때 또다시 해결사 민호의 소리가 다시 들렸다.

“여기 있다. 이거면 될 거야!”

과연 그랬다. 큰 돌에서 떨어져 나온 조그만 돌인데, 사진의 그것이랑 많이 닮았다. 민호가 즉석에서 시험해볼 요량으로 작은 나무를 삭둑 잘라 보인다.

“그래, 이만하면 됐어. 민호 넌 다른 애들이랑 몇 개 더 찾아보고 우리는 일단 이것 들고 가자.”

신기했다. 감자도 깎고 자르고, 양파, 당근, 고기. 안되는 게 없었다. 물론 손도 아프고 힘도 들고 모양도 예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점심도 굶고, 요리대결에서도 질 수는 없지 않는가?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우리는 한자리에 다시 모였다. 한쪽에서는 자장냄새가, 우리 앞에는 뭉툭한 카레 냄새가 제법 그럴 듯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선생님의 총평,
“선생님은 자장과 카레의 맛 대결인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석기시대와 철기시대의 대결 이였구나.”

“하하하........”

우린 모두 웃었고, 배부르게, 맛있게 먹었고, 자연 생태조사도, 물놀이도 모두 즐거웠다. 덤으로 석기시대의 행복도 잔뜩 누렸다.


2008년 8월 대구박물관 주먹도끼 특별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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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9(10:52) from 203.175.57.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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