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구 작가 press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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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 shiny9 (shiny9@shiny9.com) Vote: 318, Hit: 1455, Lines: 119, Category: Etc.
2007 울산퍼포먼스 아트페스티발-이혁발(글)
울산에서 퍼포먼스 아트 참관하기




                                                이혁발(독립큐레이터, 행위미술가)




공업도시로만 알고 있던 울산에서 ‘생명, 자연, 인간’이라는 주제로 행위예술잔치가 벌어졌다. 울산광역시 문화예술회관 야외전시장에서 벌어진 실험예술의 걸쭉한 한판 잔치, <울산 퍼포먼스아트 페스티벌> 2007년 5월 18~20일까지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의 주관으로열렸다.  그 열정의 현장 속으로 깊숙이 몸을 담근다.




2007년 5월 18일(금)

개막을 선언하자, 폭죽이 터지고 비눗방울이 솟아올랐다. 사회도 보며, 작품해설도 하는 [해설이 있는 퍼포먼스]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은  이 행사 전체의 예술감독인 김백기가 맡았다. 미래의 의상 같은 반짝이 의상을 입고나와 “안드로메다 27 …”등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으며 관객들을 전위적인 예술세계로 이끄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백기는 공연이 바뀔 때마다 다른 복장으로 나와서 기존의 다른 공연행사와의 차별성을 두려 했다. ‘실험’과 ‘소통’이 그의 공연 연출의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사용했었던 듯 한 다양한 복장을 착용함으로써 공연진행도 작품인 듯 아닌 듯 모호하게 하여 이 행사진행 자체도 예술적이고자 애썼다.




첫 무대는 크로스오버 일렉트릭 퓨전 국악 팀인 황진이가 올랐다. 황진이는 전통악기인 해금, 가야금, 대금을 주축으로 하고 서양의 최신악기인 전자바이올린, 전자첼리스트를 멤버로 구성하여 우리 음악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는 팀이다. 영화 <은행나무침대>에 나오는 음악이 첫 곡을 장식하고,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가가 그 뒤를 이었다. 대금이 폐부를 적시듯 흐느꼈다. 다음 곳 <새야 새야>는 락 리듬으로 펼쳐졌다. 하이힐과 개량 전통의상이 잘 어울렸다. 이들 공연에서는 다양한 포즈의 멈춤 동작이 구경거리다. 곡연주 시작하기 전 멈춤동작이나, 휴식연주자의 멈춤 동작(포즈)은 뭔가 그럴듯한 분위기 조성에 딱이다.

다음 공연은 김석환의 <독 속에 피는 사랑>이 펼쳐졌다. 한복에 삿갓 쓰고 독을 지게에 매고서 지게 작대기를 들고 휘청휘청 등장한다. 여러 관객들의 신발을 얻어 독 속에 넣는다. 한발 앞으로 한발 옆으로 얼렁얼렁 춤춰가며 무대로 오른다. 지팡이로 무대 바닥을 치기도 하며, 손사위 발사위한 후, 지게를 내려놓는다. 지게에서 독을 꺼내 머리 위로 한껏 올린 후 무대 바닥으로 던져 독을 깬다. 신발에 돈(진짜 돈과 가짜 돈을 함께)을 채우는 사이에 여성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열 살 남짓된 남자아이…그렇게 누워 있었다/ 먹구름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가는 햇빛/ 나는 보았다…분홍구두에 오롯이 돋아난 푸른 새살…-울산 퍼포먼스아트 페스티벌 오던 날’. 공연에 오면서 작성한 자작시 같았다. 신발을 관객에게 돌려주려고 신발 한 짝을 들면 관객이 깽깽이걸음(한발로 깡충깡충 뛰며)으로 걸어나와 자신의 신발을 찾아갔다. 신발을 다 돌려 준 후 아리랑 노랫가락에 맞춰 지게를 메고 퇴장하며 작품을 끝냈다.  

작가는 깨진 독숙의 물건을 찾는 것을 미래의 유적발굴 현장 같은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신발은 우리가 걸어 온 흔적들을 담고 있다. 우리들은 먼 태초의 어느 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여 먼 훗날까지도 걷고 있을 것이다. 그 궤적의 상징물이 신발이다. 그 신발이 유적처럼 귀한 물건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현재의 우리 삶이 미래에는 전통이 된다. 우리의 걸음걸음을 소중히 하자는 의미를 담았으리라. 그 미래의 유적에 미리 복돈을 바치고, 그 구복의 힘이 행복과 희망을 주는 도깨비방망이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었다.

이어서 신용구의 <미로속의 실타래>가 진행되었다. 흰 꽃 달린 적자주색 옷에 흰 분칠의 얼굴을 하고 조용히 앉아 있다. 내레이션이 들린다. “삶과 죽음. 씨앗. 바람 그리고 그리움… 우리 삶이라는 것이 인연에서 시작하고 인연에서 끝을 맺지 않을까? 맺고 풀어내는 일에 끝없이 시달리면서도 거미줄 같은 실타래를 풀지 못해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또 어디론가 길을 떠난다”  애절한 음악이 흐르고 공연자는 실을 하나하나 감으며 무대 쪽으로 이동한다. 명징한 피아노 소리 들린다. 실타래를 사람들에게 하나씩 붙잡고 있게 한다. 여기저기 펼쳐진 실타래들의 선을 양손바닥에 합장하며 끌고, 연주하듯 그 선들과의 교감을 한다. 어루만지고 펼친다.

신용구의 작업은 이야기구조보다 이미지적이다. 작업의 메시지는 단순화시킨 후, 분장과 영상, 조명으로 분위기를 연출하고 느린 움직임으로 관객들에게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 어떤 인연의 끈을 잡고서 어떤 인생의 길을 가고 있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다 영상과 조명이 함께 어울려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꿈결인가,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인가? 일장춘몽 같은, 한 줌 먼지 같은, 부서지는 포말 같은 인생의 한 단면을 관통해 본다.




다음 작품을 소개하러 나온 김백기가 머리위에 원형 아크릴 통을 쓰고 나왔다. 그 통 안엔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물고기가 머리 위에서 있을 수 있지 않는가?”라고 관객들에게 물으며, 인식의 전환, 상상의 단초를 던졌다. 관객들의 수근거렸다.

이어 셀린 바케와 김봉원의 <보이지 않는 표면의 두드러짐 A FLEUR DE PEAU>이 공연되었다. 차임벨소리 같은 음악이 들리자. 흰 천을 뒤집어 쓴 바케가 웅크리고 있다가 느리게느리게 앞으로 나왔다. 영상은 시내를 질주하는 사진과 지하철의 사람들이 무성영화처럼 움직이는 영상이 질주한다. 바케는 변형된 살풀이를 추었다. 그리고 계단의 중앙에서 몸동작을 하며 외친다. “비 온다”, “샤워하고” “수영 좋아한다. “스트레스 없다” 등등. 그리고 남녀가 만나 등에 기대듯, 안기듯, 엉겼다 풀었다하며 춤을 추었다. 따로 독무하거나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만나고, 무대에서 다시 만난다. 그리고 무대 뒤, 유리창 뒤로 가서 불빛을 관객을 향해 비춘다.

우리 몸이 외부와 만나는 최전방이 피부이다. 이 피부가 세상과 맞닿는 느낌을 만끽하며 그 너머의 진리들에 대한 성찰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수영을 좋아하고, 비도 좋아한다는 몸짓과 외침은 몸이 느끼는 쾌감과 기억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몸의 기억, 몸과 타인과의 관계와 소통, 그 경계에 대한 사유(만나고, 부딪치고, 헤어지고 하는 몸짓),  성찰의 기회를 가져보려 한다. 빛의 명멸을 보여주며 생명 에너지를 말하며, 경계에 대한 것과 빛의 이면의 그림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작품이었다. 공연 중 내린 빗방울이 피부에 닿을 때의 그 느낌들, 그 빗방울 하나하나가 살아있음의 그 생생함을 자각시키지 않았을까? 또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명징한 죽비의 내리침 같지 않았을까? 올해 결혼한 이 둘은 그 행복함 때문인지 둘이 만나는 장면에서 움직임이 감미로웠다.

이어서 삭개오의 영상퍼포먼스 <낮은 밤으로터…>가 진행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화면에도 장대비가 내린다. 억수 같은 빗소리가 두두두둑 스피커를 통해 쏟아진다. 이어 화면은 다양하게 변주된다. 나눠지고, 분할되었다가 합해졌다, 빠르게 지나가고, 다양한 이미지들이 중첩되고, 혼용된다. 이미지들은 각기 존재하면서 같이 공존한다. 낮과 밤이 공존하듯이.  삭게오는 이번 행사 내내 공연장 뒤 벽면에 비쳐지는 영상을 컨트롤했다.

이어서 김안식, 서승아의 <삶 Life>이 공연되었다. 물방울 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남이 여를 겁탈하는 듯한 몸짓을 보인다. 격렬한 꿈틀거림, 오르가즘, 그리고 둘이 떨어졌을 때는 한 인간이 탄생된 것이다. 우리들은 작은 씨앗처럼 어디에선가 흘러와서 짧은 인생을 살다가 그렇게 스러져간다. 남녀가 만나 하나의 생명이 잉태되어지고 고단한 삶의 여정을 이어간다. 그 여정의 시간에 서승아는 꽃송이를 입에 물고 손을 떤다. 손을 털고,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며 넘어지고 꿈틀거린다. 서승아는 부토가답게 온 몸에 흰 분칠을 하였다. 부토의 분칠은 죽었을 때 썩지 말라고 뿌리는 횟가루를 의미하며, 주로 고통스럽고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부토는 고통스러운 모습이 가장 진실한 모습이라는 것과 아름답고 우아한 것만이 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동작도 춤이 될 수 있는 것을 보여줘 세계 무용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일본 무용의 한 형식이다. 김안식은 무대 뒤 흰 천에 긴 작대기로 말을 그리다가 나중엔 손으로 직접 그린다. 그가 비천마(飛天馬)라 명명한 말이 빗물에 의해 흘러 내린다. 그럴수록 정말 비상하듯 더욱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힘들고 광기적인 삶에 대해 서승아는 온몸으로 에너지를 분출한다. 김안식이 반딧불이를 의미하는 반짝이는 원 형태를 들고 나온다. 청정한 곳에 사는 반딧불이를 하나의 씨앗처럼 생명의 모태를 상징하였다한다.

작품은 만나고, 잉태하고, 태어나,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인생을 표현한 것이다. 윤회하는 세상의 한 사이클을 이미지화하여 보여준 작품이었다. 반딧불이가 사는 세상처럼 청정하고 밝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그 안에서 활활 뜨겁게 살다가라고 작가들은 외치는 것 같았다. 너무 뜨겁게 열정적으로 공연하다 이날 서승아는 공연 중 손바닥이 찢어졌다. 출혈이 많았지만 공연을 멈추지 않았다. 공연 끝나고 간단하게 응급조치를 하였으나, 결국 늦은 저녁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게 되었다. 다행히 다음날 안정을 찾았다.




공연 후 뒤풀이 장소인 막걸리 집에선 즉석 퍼포먼스가 벌어지기도 했다. 심홍재가 노래를 부르러 일어서있을 때 김석환이 심홍재의 빡빡 민머리 위에 주전자 뚜껑을 얹어놓고 술을 부었다. 심홍재의 얼굴 위로 술이 흐르고, 김석환은 자신의 머리 위에도 막걸리를 부었다. 이 즉석 공연에 이어 심홍재는 판소리가락에 즉석 가사를 지어 부르며 술집 안 사람들을 함께 어울리게 만들었다. 얼씨구 지화자 좋다. 걸쭉한 막걸리와 걸쭉한 노래, 그 가락에 취하니 이 아니 즐거울쏜가?







2007년 5월 19일(토)

첫 공연은 타악그룹 KATA가 장식했다. 나발, 나각, 쇠장고, 사물북, 징 신디사이저, AX-7, 디저리두, 봉고, 퍼커션드럼 등을 이용하여 우리 리듬과 라틴 리듬, 삼바리듬이 혼용된다. 우리 정악의 영산회상에 12발 상모 돌리기도 하고, 뉴질랜드 축제인 Fire poi로 흥을 돋우기도 했다. 놋그릇을 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음을 목소리로 변화시켜 “우아우아우아아앙”하며 음의 공명을 실제적으로 보여주었다. 꼬마 관객을 무대로 불러내 실제 해보게도 하였다. 앙코르 곡으로 ‘새야 새야’, ‘아리랑’을 바디드럼과 AX-7, 국악 타악기로 4비트의 락버전으로 연주하여 관객 모두 박수치고 그 리듬에 빠지는 흥겨운 자리가 되었다. 단 이들 공연은 공연자는 바뀌었지만 1년 전이나 똑같은 레퍼토리라는 것이 아쉬웠다.

이어 심홍재의 <울산(蔚山)에서 울산(鬱散)하다>가 공연되었다. 빨간색 헝겊인형을 그림자인양 양다리를 잡고서 질질 끌고 등장한다. 그리고 사각형의 천 위에 배게를 세운다. 사각형은 사방(四方), 천지사방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작은 요령이 달린 오방색의 색띠들을 연결하고, 사방 안 원형 안에서 삼각형의 12지신이 세워진다. 이윽고 사각형 위엔 베개가 왕관 모양의 기념탑처럼 섰다. 부채에 ‘蔚山에서 鬱散하다’라고 쓴다. 사람들에게 나눠진 12장의 화선지를 사방의 외곽으로 나선형으로 돌린다. 나선형의 화선지에 불을 붙인다. 행위자가 그 가운데 누워 있는 채 행위가 끝난다.

‘울산에서 울산하다’라는 말의 뜻을 작가는 울산에서 답답한 기분을 떨쳐 없애 버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했다. 울산이라는 곳에서 벌인 제의식 형태의 풀이행위였다. 사방, 팔방속의 우리들, 12달, 60갑자 속에서 윤회하듯 살아가는 우리들, 그 세상의 이치를 상징적으로 만든 것이 왕관 모양의 기념탑이고, 그 기념탑을 만들며 기원한다. 답답하고 울적한 삶이 아닌 쾌청하고 상쾌한 인생이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행위를 한 것이다. 매달려 잇던 인형(안 좋은 것들)들은 버리고, 관객들과 함께 만든 화선지로 만든 나선형을 태움으로써 그 모든 기원들을 하늘로 올려 보낸다. 답이라도 하듯이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었다. 답답함을 시원하게 풀었지게 했을까?

이어 간절곶의 <오감도>가 공연되었다. 무대엔 솟대가 여럿 세워져 있다. 가면을 쓴 남1이 관중석에서 무대로 주변을 살피며, 어깨를 떨며 등장한다. 위 무대에서도 흰 가면의 남1 여3이 등장한다. 난간에선 여1이 물뿌리개로 물을 뿌린다. 남1의 불안한 몸짓, 무대로 모두 올라온 이들은 물뿌리개로 물을 뿌린다. 사람에게도 뿌리고나서 가면을 벗었다. 이때 내레이션으로 이상의 시 ‘오감도’의 ‘시 제1호’가 즉석으로 낭송된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오…제13인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지 않아도 좋소.” 이 작품의 전반적 메시지가 이 시에 있다. 불안하며 때론 절망적인 질주, 길이 뚫린 길이든 아니든, 의미 없을 만큼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의미 없는 자맥질 같은 삶을 사는 현대인을 적나라하게 표상한다. 낭송 중에 행위자들은 흰색 인형을 끌고와서 무대 앞으로 던져 버린다. 그리고 다시 가면을 쓴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운데 하얀 인형이 바닥에 시체처럼 잔해처럼 상처받은 영혼처럼 널브러져 있다.

가면은 인간성과 인간의 내면을 가리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 가면을 벗는 것은 인간성의 회복을 희망하는 것일 것이다. 물을 뿌리거나 신발을 벗는 것은 생명성을 회복하자는 의미를 담았으리라. 환경 파괴를 그만두고 순수인간으로의 복귀를 꿈꾸며 건강한 생명성을 획득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공연은 류환의 <자연과 인간>이었다.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 끼고 007가방을 들고 등장한다. 여1명에게 흰 천을 씌우고 우산을 들게 한 후,  검은 테이프로 묶는다. 남자 1명에게는 횃불을 들게 하고 검은 천으로 씌운 후 흰 테이프로 감는다.  신문을 본다. 신문엔 ‘文明 civilization, 人間 Human'이라 쓰여 있다. 문명과 인간 글자 사이에 담뱃불로 구멍을 뚫고 신문에 불을 붙인다. 웃통을 벗고 얼굴을 붉게 칠한 후 호루라기를 불며 종잇조각들을 던진다. 호외를 뿌리듯이.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가 보기에 세상은 경종을 울려야만 했을 것이다. 호루라기는 경고, 비상의 의미를 담았으리라. 문명을 빙자하여 자연과 인간을 파괴하는 이들에게 경고의 단발마를 외치는 것이다. 시계를 깨고 권총을 쏘면서 행위를 끝낸다.

작가는 횃불은 자유의 여신상을 의미하고, 검은 색과 흰색의 대비는 삶과 죽음, 부활과 소멸의 의미를 담았다 한다. 우산을 펼치는 것은 자연보호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작가는 예술작품이 메시지가 있어야하며 그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고 말하였다. 자연을 파괴하고 문명발전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잘 이루지 못하는 탐욕스러운 현대인에 대한 경고를 던지며 그 탐욕의 심장을 향해 마지막 권총을 발사한 것이다.

이어서 다음의 <날지 못한 꿈>이 공연되었다. 포은선생의 시를 탁본한 영상이 뒤 벽면에 흐른다.  큰 붓으로 붉은색의 ‘龍’자를 쓴다. 승무를 춘다. 테크노 음악에 맞춰 바라춤을 춘다. 나비등의 등불로 매화를 비춰 동그란 원 안에 매화꽃이 쓸쓸이 비춰지며 행위가 끝난다.

작가는 고려 멸망의 안타까움이 스며있는 포은 선생의 시를 통해 그와의 교감을  가지며,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천 년 전이나 백 년 전이나 물은 하나의 모습으로 흘러갈 뿐”이라고 말한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회매(밀납으로 만든 매화꽃)가 비친 원모양은 “하나이면서 전체이고, 전체이고 하나인”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우리들은 그 하나에서 벗어나 서로 벽을 만들고, 다툼을 벌이고, 자신이 최고라고 뻐긴다. 윤회매는 환생을 의미하는데, 옛날 분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 개인의 삶을 반추해보는 것이 이 작품의 궁극적인 메시지이다. 어떤 판단이든 중심을 어디에 두고,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가 있다. 어떤 과거는 그 전 과거의 미래인 것이다. 우리가 시대의 소용돌이를 맞닥뜨리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자신은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자. 우리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라고 이 작품은 물어보는 것이다.

이어 SORO(문재선, 유미, 음악:양용준, 정혜경, 의상:박정숙)의 <La Deux 둘>이 공연되었다. 붉은 의상에 물이 든 아크릴 막대를 검처럼 등에 차고 등장한 남, 녀.  막대의 물을 검처럼 휘두르며 물을 뿌리기도 하고 노처럼 허공의 물결을 헤치기도 한다. 이어서 이들은 바다인양 설정된 각각의 아크릴판에서 고인 물들을 손으로 물결을 만들기도 헤치기도 한다. 허공의 노 젓기나 손으로 물 치기는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끝없는 죽음, 무간도 같은 유한한 인간의 하릴없는 자맥질 같은 느낌을 주었다. 반복의 지루함을 통한 각성을 의미했을까?  아크릴판 밑에 마이크를 달아 물결소리, 삐이익 미는 소리, 물 흩뿌리는 소리를 극대화한다.  여 행위자가 아크릴판 밑에서 몸짓을 하다가 무대를 뛰어다니기도 한다. 물통이 들어 올려지고 물이 떨어진다.

‘노인과 바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이 작품은 물결을 헤치며 나아가는 인간들의 인생의 항해를 상징적으로 이미지화한 것으로 보았다. 작가는 다른 얘기를 했다. 필자는 생명력이나, 살아있음에 대한 ‘피’의 상징으로 붉은 의상을 착용했다고 생각했으나 작가는 물의 빛을 강조하기 위해 붉은 색 의상을 입었다고 했다. 작품의 의미도 작가는 “둘은 둘이 아니며, 존재하는 하나의 부분이었다. 실은 하나이기를 바라는 모든 것이 되기를 바라며, 어떤 것이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혹은 전혀 다른 모습을 만나기를 바란다.”라고 적고 있다. “물은 잔잔하기도 하고 격정적이기도 한두 가지 모습이지만 결국은 하나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말을 스페인에서는 ‘살라오’라고 하는데 그 말은 ‘지독한 불운’이란 뜻이다.” 결국 그는 불운한 삶의 한 가운데에 서서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의 삶을 투영해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처럼 망망대해의 돛단배 같은 인간의 삶, 존재에 대한 사유를 말하는가 보다. 제목의 둘은 곧 1인칭을 말함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내면과 외면의 두 자아에 대한 돌아봄인가?




2007년 5월 20일(일)

들소리의 북소리로 이날 공연이 시작되었다. 대북의 북소리가 무대를 진동시키고 바닥을 지나 관중석까지 저음파의 리듬을 타며 진동시킨다. 중북이 여린 장단에서 출발하여 드넓은 광야를 말 달리듯이, 거센 바람 같은 휘몰이로 호흡을 더 빠르게 만든다. 북소리에서는 유구한 역사의 냄새가 난다.  원시의 그 아득한 선조들의 외침 같다. 태초의 리듬 같다. 그 리듬이 우주의 근원과 맞닿는 듯 온 몸이 달거리에 걸리듯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그 원시의 소리에 반응한다. 바라, 목탁, 징, 편종, 괭가리, 타우벨도 등장시켜 타악리듬의 쾌감추를 자극한다. 관중들도 손뼉을 치며 그 흥에 젖어든다.

이어 김춘기의 <문명 그리고 생명>이 공연되었다. 두두두두 음향이 들린다. 무대엔 비닐천이 덮여져 있다. 그 안에서 꿈틀꿈틀하더니 연기가 폴폴 난다. 이윽고 흙칠을 한 행위자가 꽃을 들고 서서히 위로 솟아 나온다. 관객들에게 흙덩어리에 꽃을 하나씩 꽂게도 하고, 직접 갖게 나눠주기도 하며 행위를 마금한다.

작가는 문명과 도시의 발달로 오염과 자연환경 파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자연과 더불어 참다운 인간의 정신을 찾자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라 했다. 인간은 꽃에 0.5초 만에 즉각적인 반응을 한다고 한다. 프랑스 심리학자인 듀센의 실험(꽃, 양초, 과일 등을 선물로 줬을 때 얼굴의 표정을 찍어 그 반응을 살핀 것이다)에 의하면 꽃을 받았을 때, 인간들은 다른 어떤 물건보다 ‘듀센미소’라고 불려지는 100%의 행복한 미소(양초나 과일은 80%, 90%의 미소)를 짓는다한다. 꽃을 좋아하는 것은 문화나 학습이론이 아닌 근원적, 본능적인 것이라는데 주목해야한다. 20만 년 전의 유적인 우리나라 두류봉 동굴에서 진달래 꽃가루가 나왔다한다. 꽃을 장식적으로 이용했고 꽃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51922;는 인간의 본능의 소리를 들으라고 작가는 외치는 것이리라. 모두들 행복한 미소를 짓기를 바라며 상처의 치유를 위해 다함께 자연으로 돌아가자라고 주장하는 것일 게다.

이어 김은미의 <그 사이에>가 공연되었다. 무대엔 붉은, 검은색 우산이 펴져 있다. 우산은 죽은 영혼들의 핏방울을 의미한다고 작가는 말했다. 종이 조각배 모양의 모자를 쓰고 노란색으로 된 한지 옷을 입은 행위자가 금붕어가 든 어항을 들고 청색 천 위를 걷는다. 청색 천의 한쪽 끝에는 ‘生’이란 글자가, 다른 한쪽엔 ‘死’자가 가운데에는 ‘人’자가 쓰여 있다. 걸어가며 떨어뜨린 금붕어는 팔딱거린다. 행위자는 울면서 발로 금붕어를 밟는다. 그리고 어항의 물을 쏟아 부었다. 구르며 기어서 금붕어를 손으로 잡아, 가슴사이에 넣는다. 푸른 천을 싸말아 배에 품는다. 가슴에 있는 금붕어를 관객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행위를 끝냈다.

우리들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미생물들의 목숨을 쉽게 대한다. 우리 인간도 삶과 죽음이라는 큰 강에서 서 있는 미미한 존재일 뿐인데. 이 작품은 오만하지 말라고, 생명경시하지말라고 울리는 경종의 의미일 것이다. 금붕어가 발에 눌릴 때의 그 물컹함! 그 촉감의 슬픔이 그녀의 눈에 눈물을 맺히게 했으리라. 작가는 모든 생명이 죽음으로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되어 자연 속으로 회귀한다는 점과 모든 생명체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자연과의 강력한 연계로 존재한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음을 도록에서 적고 있다.

이어 10(있다+마르키도)과 조안 라지가 하께 공연했다. 장남감과 미니어쳐 악기들, 목소리를 연주하는 있다(itta)와 노이즈 음악을 만드는 마르키도가 만들어내는 음악적 퍼포먼스이다. 마르키도는 지속해서 소음 비슷한 파열음들로 일정한 반복리듬을 만들어내며 연주하였다. 그와 ‘있다’는 에너지의 교감을 이루며 온갖 음들의 난무를 즐긴다. 카오스가 아니라 프락텔이다. 불규칙하며 단절된 듯 하지만 리듬의 흐름을 만들어가며 음들을 직조한다. 이때 삭게오가 만들어내는 뒷벽의 영상은 속도감 있게 달린다. 블랙홀 같은 중심을 향해 하염없이 달려간다. 음들도 따라 질주한다. 잇다는 장난감 나비를 파닥이며 구음을 한다. 조안은 불구자의 춤, 병신춤 같은 춤을 춘다. 기괴하게 비틀리고 떨리기도 한다. 신서사이저 음악도 떨린다. 화면은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명멸했다를 반복한다. 있다가 애기 북을 가지고 연주한다. 조안이 아이들에게 사탕을 던진다. 조안은 죽음의 춤, 영혼의 춤이라는 부토를 기본바탕으로 하여 초반부엔 기괴한 몸짓을 하다가 사탕을 만들 준 이후에는 약간 코믹한 동작들을 보여주었다. 아이 관객들은 사탕에 열광했다.

이어 김광철의 <로드: 크로스파이어 바이 아트로봇>이 진행되었다. 헤드폰을 끼고 한쪽 눈과 입이 가려진 행위자가 로버트 걸음으로 움직인다. 왼쪽 손엔 MP3플레이어로 음향의 시작과 끝을 조정하고 강약을 조절한다. 오른쪽 손가락엔 매직, 담배 등이 꼽혀져 있다. 비틀거리며 한발, 한발 앞으로 움직인다. 입에서 빨간 줄을 뽑아낸다. 이 빨간 줄을 관객에게 쥐고 있게 한다. 이 빨간 줄은 혈관, 생명력, 욕망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줄자의 선을 폈다가 당긴다. 줄자의 상징은 사회적 관계나 타인의 인식에 대한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왼쪽 다리를 들어 불안한 자세를 유지한다. 앞으로 움직이며 이번엔 왼발로 중심을 잡으며 레이져포인트와 담뱃불로 얼굴에 십자선을 그린다. 이것은 위도와 경도의 표시, 십자포화, 또는 조준경의 좌표를 보여주는 것으로 스스로가 타깃이 되는 의미를 담았다 한다. 제자리걸음을 한다. 관객에게 쥐어줬던 줄을 손가락으로 감으며 나아간다. 한쪽 다리로 지탱하며 불안한 포즈를 잡는다. 작가는 흔들리는 육체는 삶의 불안정을 의미하며, 한쪽 발로 지탱하는 것은 현대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했다. 나아가지는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계속 앞으로 가야만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손에 음향 리모컨을 가지고 동작을 취할 때마다 음향의 높낮이를 변화시킨다. 음악은 can의 Halleluhwah, 싸이키델릭하면서 정신분열적인 기묘한 느낌이 들어 이 음악을 선택했다고 한다. 관객에게 주어진 빨간 줄을 당기면서 행위를 끝낸다.

김광철은 손가락에 여러 개의 도구가 꽂아져 있는 것은 “다중동력의 중첩 이미지”라 한다. 한손에는 MP3, 다른 손엔 다양한 도구들은 각기 역할을 하는 신체기관을 보여주며 “현대를 사는 불안한 존재들을 상징화”한 것이라 한다. 또 “모든 만물은 인식되지 않는 자체적인 운동, 즉 생명동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통해 욕구를 창출하고, 그러한 욕구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변형되어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한 생명동력을 가지고 움직이면서도 위태위태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얼굴에 십자선을 긋는 행위의 상징은 스스로 타깃이 된 현대인이다. 작가는 “불안과 희망, 허무와 유희 등이 동일 시간대에 존재하는, 그 시공의 한순간, 접점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덧붙여 십자의 교차점을 현대인이 경험하는 죽음과 삶의 경계로 보고, 그 접점, 그 찰나의 순간이 “존재 각성의 시간”이라고 했다. 큰 스님의 외마디 가르침, ‘할’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500도가 넘는 담뱃불로 피부가 탈 듯 가까이 대어 십자를 그리면서 작가는 깨달음, 각성을 외치는 것이다. 내가 타깃이 되어 순식간에 쓰러질 수 있다. 그 절박함으로 자신을 투영해보는 기회를 한번쯤 가지라는 말씀. 바쁘게 하루하루를 흘러 버리지 말고.

이 행사의 마지막 공연은 한국실험예술정신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공연되었다. 나무이젠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우화를 낭송한다. 권노해만이 머리에 나무뿌리를 쓰고 등장한다. 권수임이 금빛 반짝이는 정령이 되어 나플나플 날아다닌다. 김백기는 삼각형의 바다위에서 허공의 노를 젓는다.

거친 인생의 항해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우화는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즘에 안도현의 <연탄 한 장>이란 시의 몇 구절을 읊어 본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또 하나 유명한 시, <연탄재>가 떠오른다.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보살핌이든 사랑이든 뜨겁게 나누어주면서, 그렇게 활활 타오르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작품은 파스텔 톤의 예쁜 색깔로 잘 그려진 동화책을 살아 움직이게 펼쳐놓은 것 같았다.




이렇게 울산퍼포먼스아트페스티벌의 3일간 잔치가 끝났다. 3일 내내 비가 추적추적 오는 바람에 진행이 어려웠지만 작품은 건조함이 아닌 질펀한 감성으로 관객에게 다가갔을 것이다. 비가 가져다주는 분위기가 작품을 더욱 인상 깊게 보게 했을 테니깐. 울산이라는 곳에서는 처음으로 이뤄진 행위예술잔치는 풍성하게 끝을 맺었다.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이런 감성 잔치가 지속해서 있기를 기대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울산을 떠나왔다.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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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6(05:24) from 211.49.9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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