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의 연극 일기

  작성자   : 허승준 (anthro2001@hotmail.com) 추천: 405, 조회: 1438, 줄수: 3, 분류: Etc.
허승준의 연극일기 15
4월 23일. 동생 생일이라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오느라 6시가 넘어 소극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달리 배우들이 많이 피곤해보였습니다. 이럴 때는 공연이 오히려 부담일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한울이 친구들이 공연을 보러 온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진심인지 알 수 없어 모두 공연을 강행해야 하는지 난감해했습니다. 하지만 서먹해하면서도 순수한 모습을 보니 친구들이 큰마음을 먹고 온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끝에 ‘거울인형’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네 번째 보는 공연이었습니다. 처음에 거울인형을 본 이후로 한동안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계속해서 여러 번 보니 작품에 대한 집중과 이해가 높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먼저 음악 자체에 대한 감상이 되고, 이로 인한 연상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2막에서는 영화에서 본 중세가 떠올랐습니다. 마치 제가 이때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마지막에 사라 씨가 눈물 흘리는 장면을 보았는데, 이번에는 가은 씨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연기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지만 눈물만큼 순수한 감정의 결정체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이때 연기가 아닌 실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것이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난 후, 관객들은 신선한 자극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정확하게 표현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제가 관객에서 다시 한울이 친구들로 돌아와서 “지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낯선 질문에 당황스럽지만 열심히 생각하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저는 이 친구들에게 그때의 고민을 지나고 그 연장을 겪으면서 깨달은 바를 몇 가지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참고하라는 뜻이 아니라, 저도 그랬듯이 제 이야기를 듣고 말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절실했던 마음을 채워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들은 몇 명 없었습니다. 그중 한분이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당시 실망스러운 성적에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친구 시험지를 베껴 맞은 국사 100점을 보시며, “녀석, 국사는 잘하네.”라고 칭찬해주셨습니다. 학교에서는 부담스러워하는 학생회의 활동에 오히려 학생회가 학생의 날을 잊고 있다고 나무라셨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고 유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도 선생님들 중 유일하게 응원해주셨습니다. 당시 저는 누가 보더라도 도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제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믿어주셨습니다. 인류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도 선생님의 영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 친구들, 아니 누구에게나 이런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경험에서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험생이라고 미루지 말고 조금 더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다음: 허승준의 연극일기 14 2006/04/29(00:22)
CrazyWWWBoard 2000

Vote Reply Modify Delete Forward Next Post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