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의 연극 일기

  작성자   : 허승준 (anthro2001@hotmail.com) 추천: 432, 조회: 1476, 줄수: 4, 분류: Etc.
허승준의 연극일기 14
4월 22일. 거리의 많은 사람들처럼 토요일 오후의 설레는 마음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파라솔에 앉아있는 한울이, 가람이, 해님이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앞서더군요. 오늘은 예전에 한얼극단을 취재했던 기자님이 공연을 보러 오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은 씨와 사라 씨는 준비하고, 선생님과 저는 밖에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난주에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제 모노드라마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 이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습니다. 방법을 떠나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영화나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나에게 이입하거나, 어떠한 주어진 상황에 따라 말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내 무대에 놓인 적이 없었습니다. 먼저 지금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듬어보았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내가 오랫동안 천착(穿鑿)한 주제이고, 며칠 전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중 공감하는 시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낭독하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같이 덧붙여볼까? 하지만 왠지 진부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뾰족한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어떻게 말해야하는지 모르는 연극도 많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문제의식 없이 연극을 하기 위해 연극을 하는 문제를 지적하신 뜻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우리말도 그렇지만 독일어에도 “연극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보여주기 위해서 거짓말하지 마라”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연극은 연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취재하러 왔던 기자분이 이제 관객이 되어 오셨습니다. 저는 세 번째로 보는 ‘거울인형’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배우들의 연기가 어떻게 되는지 가늠하기 위해 조금 더 집중해서 관람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연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배우들의 동작이 어떤 규칙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고, 몸의 상태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끔 1막에서 배우들이 일어설 때 다리가 떠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것이 힘이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두 다리로 걷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듯이 그 과정을 연기로 보여주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사라 씨가 분장하지 않은 눈이 인간의 태초를 표현하기에 더 자연스럽고 확연하다는 느낌은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은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었다고 감상해주셨습니다. 이것이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요. 그리고 한얼극단이 지루해하지 않고 항상 새롭게 연극을 올리고 있어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이것은 관객으로부터 마땅히 받아도 되는 칭찬이 아닐까요. 이런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관객들과 배우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관객들이 돌아가시고 난 후, 오늘 공연에 대한 평가를 하였습니다. 배우들은 이번 공연은 몸이 한결 부드러웠고 편하게 연기가 이루어졌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지난주에 지적됐던 부분이 나아지고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희즙 선생님께서는 조명과 음향을 담당하실 때, 부담스러워서 관객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연극을 떠나서 관객의 표정에 냉정하기 어려운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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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8(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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