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의 연극 일기

  작성자   : 허승준 (anthro2001@hotmail.com) 추천: 478, 조회: 1478, 줄수: 3, 분류: Etc.
허승준의 연극일기 13
4월 16일. 지난주에 선생님께서 루터신학대학에서 공부하셨다는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사라 씨에게 루터신학이 우리나라에서 어느 종파에 해당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사라 씨는 여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며, 한얼 가족은 비교적 자유로운 장로교회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제도적 종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저로서는 다행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독실한 불교 신자이셨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불교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과 놀고 싶어 교회에도 가본 적은 있으나, 아버지께서 할머니의 뜻을 저버릴 수 없다며 반대하셨습니다. 대신 어른이 되면 제 뜻에 따라 종교를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저는 어느 종교를 선택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생활하기 가장 편한 개신교를 믿으려고도 해보았으나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믿었던 불교는 철학적으로 아주 매력적이었으나 그 이상 발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때 저의 종교적인 고민을 해결해준 책이 바로 현각 스님의 ‘만행ㆍ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하다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스님의 이야기입니다. 전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하고 있는 종교적 고민이 지극히 정상적이며, 중요한 것은 진리를 찾기 위한 과정이지 그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고 있으며, 앞으로도 제 생활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은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후에는 날씨가 맑아 파라솔에 앉아 어제 공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관객들과 소통이 잘 되고 사라 씨가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을 회고할 때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공연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줄 알았는데, 배우들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집중하기 어려웠고 마음대로 연기가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직 배우들의 감정을 잡지 못하고 있나봅니다. 선생님께서는 미처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던 음향과 조명,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타이밍까지 지적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확실하지 않아서 말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인데, 사다리 장면에서 조금 더 격정적으로 연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여기에 대해 말씀해주셔서 조금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 쌀쌀해져 다시 소극장으로 들어와서 이야기를 계속 했습니다. 지난주에 한울이에게 삶아오겠다고 약속했던 계란을 먹으면서 이야기하니 마치 소풍 온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얼 극단의 기획과 홍보에 대한 제 의견을 여쭈어보셨습니다. 지난번에 이야기 나누었던 대중성처럼, 예술가에게는 많은 관객에게 자신의 예술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모색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얼의 팬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색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본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예술성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자에 의해서 인정받은 예술을 향유합니다. 그것이 결핍된 자신의 문화적 욕구를 빠르게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각종 연극제에 출품하여 여기에 부응할 수 있는 요소를 더하는 것입니다. 무언극의 장점을 살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접근성의 어려움은 있지만 한울의 독창성을 훼손하지 않고 시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마케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진 한얼극단의 가족 중심 이미지를 작품 중심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가족이 극단을 꾸려나갈 수는 있지만 관객들은 작품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우수성을 부각시키고, 이때에도 선택된 이미지를 설정하여 전문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 스스로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얼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획이나 홍보에 대해서도 전혀 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적으로 한얼에 대한 애정의 발로에서 나온 부족한 망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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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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