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의 연극 일기

  작성자   : 허승준 (anthro2001@hotmail.com) 추천: 407, 조회: 1426, 줄수: 6, 분류: Etc.
허승준의 연극일기 11
4월 9일. 오늘은 집에서 조금 일찍 서두른 덕분에 주말의 대학로를 즐기며 걸어갔습니다. 도착하니 해님이가 벌써 파라솔을 펴놓고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저도 딱 해님이 나이 때가 사춘기였던 것 같습니다. 겉멋에 관심 많고 친구들과의 우정이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공부 안하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고, 치고받고 싸우다가 깨진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학교에 불려 오셔야했고 아버지도 파출소에 저를 찾으러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춘기를 겪으면서 부모님께서는 단 한 번도 저를 원망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저를 온전하게 믿어주셨고 오히려 저를 탓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셨습니다. 덕분에 다시 제자리를 찾고 자존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귀엽게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해님이를 보면 부럽기도 하고 그때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낮에는 여름 같이 더울 정도로 날씨가 따뜻했습니다. 사라 씨가 오고 나중에 가람이가 왔습니다. 한울이는 며칠 동안 장염을 앓아서 그런지 얼굴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픈 한울이를 제외하고 우리 넷이 가위 바위 보로 청소 당번을 정했습니다. 저와 가람이가 걸렸습니다. 가람이가 청소기를 돌리고 저는 걸레질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청소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선생님께서 오셔서 무대가 깨끗하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저는 온통 까매서 잘 안 보이는데 신기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미처 하지 못했던 공연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가은 씨는 해님이가 가을 장면에서 책을 보다가 잠이 드는 연기가 아주 좋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미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저도 정말 잠이 들 것 같은 해님이의 연기가 놀라울 정도로 진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라 씨는 가람이가 봄 장면에서 우산을 들고 걷을 때 조금 머뭇거렸다는 지적을 해주었습니다. 가람이는 지난 시간에 배웠던 ‘마음으로 하는 연기’를 시도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보기에는 한결 가볍고 편안하게 연기를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공연하기 전에 준비도 충분히 하고 마음으로 연기하려는 시도가 전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연극일기에서 ‘정확한 연기’와 ‘느낌으로 하는 연기’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연출가나 교수에 따라 요구하는 연기가 다르지만 정확한 연기가 갖는 필요성에 대해 언급해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극인 노(能)와 가부키(歌舞伎)가 오랜 시간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배우가 바뀌면서도 유지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이 필요한 것이지요. 연기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때는 느낌으로 하는 연기에 더 많은 관심이 갔으나, 정확한 연기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한얼에서 하는 연극은 흥행을 위해 짧은 호흡으로 하는 연극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일지 모르겠으나, 학문에서도 ‘양적 방법’과 ‘질적 방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는 대표적인 방법인데, 양적 방법은 구체적인 통계나 수치를 통해서 증명하는 방법이고 질적 방법은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나 많은 사례를 통해서 증명하는 방법입니다. 자연과학이나 경제학에서 양적 방법을, 인문학이나 인류학에서 질적 방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즉, 연기에서 각각 정확한 연기와 느낌으로 하는 연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방법론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질적 방법을 선호했습니다만, 질적 방법만으로는 주장을 설명할 수 없고 오류가 많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양적 방법을 통해서 우리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고 다음을 예측할 수 있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정확한 연기와 느낌으로 하는 연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동시에 수반되어야 할 새의 양 날개와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어떤 부분에서 느낌으로 하는 연기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어떤 부분에서 정확한 연기를 통해 의미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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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5(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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