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의 연극을 보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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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최연웅 추천: 91, 조회: 614, 줄수: 29, 분류: Etc.
표현을 보고...
등록자: 최연웅 등록일: 2002년06월30일 16시56분27초  


(누가 말을 하고싶어서 할까요?
누가 말을 듣고싶어서 들을까요?
주인 없는 목소리와 언어는 도시한가운데서, 이세상 한복판에서, 메아리 없이 공허하기만 하군요. 더 이상 생명을 갖지 못하는 언어! 죽어 가는 언어!
그래서 말을 빼고 언어를 배제했습니다.) - 연출자의 변

^^;;.. 전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특히 말로 하는 논리학에 관심이 많은 편이죠. 그리구, 공연 전에 요즘 읽고 있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란 책을 읽었답니다. 그 구절에 이 말이 마음에 들더군여. 내용은 언어가 소통불가능 한 것이 아니라, 공통적으로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비판적 합리주의자라면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언어가 생명을 가져야 된다는 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난 언어란 것이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기구가 되며, 그것으로써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러기에 말을 하며, 그러한 말을 듣습니다. 문제는 매너리즘이죠. 일상화된 언어, 반복되는 언어, 그 속에 생각 없이 매몰되는 사람들이 비판의 대상이지 결코 언어가 비판의 대상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언어는 합리적 의사소통의 도구일 뿐 아니라, 감성적으로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가장 고통스런 경우 따뜻한 위로의 말을 받아보지 못했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릴적 할머니의 동화를 들은 적 없습니까? 말은 이성적이며, 또한 감성적은 것도 내포합니다.

이제 연극에서...

이번 연극은 세 개의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다리 장면과 다음으로는 전화기. 그리고 액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말을 빼고 언어를 배제했습니다.
남은 것은 굳고 딱딱한 우리들의 경직되고, 무거운, 고통스러운 몸! 뿐입니다.
우리의 몸은 사막화되고 황폐화되어서 병들어 신음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보고, 듣고, 느낍니다.) - 연출자의 변.
이 연극은 카타르시스라고 할까, 고통스러운 것을 보여준 다음 그것에서 어떤 위안을 주고자 한 의도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린 현실적인 것 보다는 상상속에서 더 많은 고통과 슬픔을 경험합니다. 감각에 있어서도 실제 온도가 있구, 체감 온도라는 것도 있습니다. 즉, 어떤 현실이 있다면 그것을 상상으로 더욱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고통과 경직, 무거움을 보여주기 위해 이 연극에선 나오는 배우들의 의상을 검게하고, 또한 배경도 모두 검은색으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배경 음악이 독특했습니다. 거의 샹송위주로 나오더군여. 이게 언어를 배제한 설정인 것 같기두 하고(샹송 이해하는 한국인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 ), 바닥에서 몸부림치는 배우들과 음악의 흥겨움에 대한 대조의 효과를 보려는 것 같기두 했습니다.
네 명의 배우는 각자의 현대인을 은유한다고 보았습니다. 한 명은 자아도취적(아마 이건 공주인형인 듯), 그리고 한명은 아부성 인물(이건 거지인형인 듯), 그런데 나머지 두명은 연극을 볼 때는 무엇을 나타내는지 몰랐는데, 연출자의 변을 읽고 그것이 바보와 병신을 비유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병신이라... 소아마비에 걸린 사람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열심히 말하려는 것을 보았습니까? 언어가 쓸모 없는 것이 아닐 겁니다. 그의 언어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있기에 그의 몸짓이 귀중하게 되는 것이지. 어떠한 의미도 없는 곳에서의 몸짓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왜 병신 인형이란 인물을 내세웠는지...
사다리 장면은 우리의 현 사회에서 성공이란 허상에 대해 말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올라가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붙잡고... 전화기 사건은 소통의 불가능성을 말하며 패거리 의식의 모습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배우들은 의미 없는 음성언어를 구사하지만 정작 관객들은 이해를 못하죠. 하지만, 배우들은 서로의 의미가 통하는 듯 합니다. 이것을 보고 언뜩 떠오른 것이 까뮈의 부조리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까뮈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통화하는 사람의 몸짓, 쇼윈도우에서 거래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생의 허망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허망함에 대한 인식은 아주 잠깐, 그리고 생각지 못한 곳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위적으로 만든 연극에서 그러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면 너무나 무모한 시도이며, 또는 굉장히 의욕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머지 액자 사건은 우리가 현실을 보는 각자의 틀을 가졌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각 배우는 액자를 통해 다른 것을 보며, 그 액자를 관객들에게 주며 그것으로 자신을 보게 합니다. 각 배우들은 액자를 가지고 사방을 한번씩 보며 연극은 끝납니다.

까뮈는 삶에 대한 허망성, 부조리에 대한 느낌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다시 매너리즘에 빠져 그 의미없는 소통의 세계로 빠져 버리기 때문에... 하지만, 이 연극은 연출자님이 말했다시피 삶의 경직성과 무거움, 고통스러움을 표현 한 것과 그것으로 인해 얻는 관객의 감동보다는,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에서 보여진 땀방울로써 삶에 대한 열정이라는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작품 같습니다.
까뮈는 부조리 이후에 대한 반응으로, 자살, 일상, 저항이란 선택에서 저항이란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러한 것을 표현한 작품으로 페스트가 유명할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있고, 그것을 파괴하는 페스트라는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열정... 이번 역극 배우들은 한국 축구로 인해 관객이 별로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와 관객을 위해 열심히 공연해주었습니다.

이 연극은 짧은 연극입니다. 한시간 정도의 길이.. 하지만, 어떤 연극은 한시간을 10시간 분량의 지루함을 주기도 하죠. 그러나 인 연극은 시간을 아주 축소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만큼 볼만하다는 것이죠. 볼 때는 생각을 비우고, 보고 나선 정말 많이 생각해야 될 연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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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7(19:19)
CrazyWWWBoard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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