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의 연극 일기

  작성자   : 허승준 (anthro2001@hotmail.com) 추천: 409, 조회: 1403, 줄수: 4, 분류: Etc.
허승준의 연극일기 9
4월 2일. 날은 아직 차지만 햇살만큼은 눈부셨습니다. 앞으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파라솔에 앉아 관객을 맞이하는 날이 기다려졌습니다. 가은 씨가 오후 공연 때 관객 두 분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친구들과 같이 오려다가 못 온 친구도 저녁 공연 때 오기로 했는데, 다른 관객들과 같이 관람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이때 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찾아오신 그 관객께서 한얼극단에 대해 어색해하셨습니다. 아마 한얼극단을 미처 알지 못하고 오셔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이해는 하지만 난감했습니다. 그때 이건동 선생님께서 오셔서 친절하게 다시 한 번 더 권해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기억해봐’를 세 번째 관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같아도 볼 때마다 느낌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제가 대본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장면까지 기억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보다 배우들이 연습할 때, 정확한 연기를 하려고 하기보다 느낌에 맞춰서 연기를 하려고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느낌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정확한 연기는 항상 어느 정도 수준까지 유지할 수 있지만, 느낌에 맞추는 연기는 변화가 크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오늘 연기는 배우들의 컨디션이 좋아보였고 관객들의 호응도 있어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여름과 겨울 장면에서 다들 정말로 해변에 놀러가서 사진을 찍고 첫눈이 오는 것처럼 좋아했습니다.
막이 내리고 배우들을 소개하자 관객들께서는 많이 놀라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어머니들이라서 애정이 더 끌리셨겠죠? 마치 아직 자식들은 이해할 수 없는 부모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난타’가 처음 시작할 때의 이야기를 해주시며 한얼극단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친구는 ‘한얼’의 뜻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우리말의 뜻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독일에서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으시다가 함석헌 선생의 책에서 이름을 빌리신 것인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한국학에 대한 고민을 했었습니다. 한국학의 열악한 현실을 접하면서 일종의 의무감을 느낀 것이지요. 그리고 모든 공부가 자신에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면, 한국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화인류학 책 중에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울을 통해 나를 보듯이,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류학에서 주로 자기 문화가 아니라 다른 문화를 연구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부담을 많이 덜었지만, 한국, 즉 나 자신과의 연계성을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만 혼자 보내기가 미안해 저녁 공연을 관람한 후에 같이 가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 양해를 구하고 오후 공연이 끝나고 먼저 나왔습니다. 종이눈이라도 치우고 오려했는데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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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8(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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