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의 연극 일기

  작성자   : 허승준 (anthro2001@hotmail.com) 추천: 413, 조회: 1297, 줄수: 6, 분류: Etc.
허승준의 연극일기 8
4월 1일. 횡단보도에서 사라 씨와 우연히 만나 같이 갔습니다. 극단에 도착하니 해님이가 혼자 앉아있었습니다. 조금 더 일찍 오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며칠 전에 해님이가 학교 공부가 힘들다는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로해주면서 왜 공부해야하는지 한번 생각해보자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아마 저도 중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말하는 공부하는 이유를 책상에 적어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공부하는 이유를 ‘지혜’를 기르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지혜에는 ‘넓이’와 ‘깊이’ 그리고 ‘힘’이 있는데, 지혜의 힘이란 결단력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이해하지 못하고 대학에 와서야 그가 쓴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와 조금 달리 생각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하는 일을 ‘왜’하는지 아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매진하는데 매우 중요한 과정인 것 같습니다.
사라 씨와는 독일교육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라 씨는 독일에서의 수업이 매우 흥미로웠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요원해 보이는 전인교육이라고 할까요? 요즘 유럽도 신자유주의의 영향에 모색(茅塞)하고 있지만 유럽의 이런 교육방식을 한번 경험하고 싶은 생각이 매우 간절합니다. 그에 반해 제주도에서는 그리 즐겁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도 유학 가겠다고 모의고사 안보고 그랬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 끝에 비오는 날씨를 핑계 삼아 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면서 영화를 보면 좋겠다는 말이 나와, 해님이와 같이 빈대떡을 사왔습니다. 기대하지 못했는데 마침 눈에 띄어 신기했습니다.
이건동 선생님께서 오셔서 지난번에 제가 왜 무대 배경이 까만색일까라는 의문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그것은 흰 도화지에 색을 입히듯, 빛으로 잘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빛이 더 잘 보이니까요.
오늘은 선생님께서 “연기를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 순간 집중을 하지 못해서 그런지 배우들이 나름대로 대답을 하고 난 다음에도 저는 제 생각을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가은 씨의 관객을 먼저 배려하고 연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들으면서, 먼저 자신의 예술을 찾은 후 대중을 고려해야 된다는 생각을 겨우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대중들의 기호보다 예술가의 철학이 우선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여기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에 대한 용어의 오해에 대해 지적하였습니다. 저는 예술성이 세상이나 대중과 거리가 있는 ‘가치’이고, 대중성이 이와 반대로 가까이에 있는 ‘인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이것들과 예술가는 격리되어야 하며 연예인은 추구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간혹 빛을 늦게 보는 경우는 있지만 진정한 예술은 시대를 떠나 세상과 소통하고 대중에게 사랑받으며, 제가 알고 있는 대중성은 대중으로 가린 상업성에 더 가깝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연기는 선생님은 ‘마음’으로 해야 하고, 그 마음은 ‘호흡’으로 다스린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어떻게 마음으로 연기를 해야 할까요? 호흡을 가다듬고 연기를 하면 마음으로 연기가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사이에 어떤 생각을 해야 가능한 것일까요?  그리고 그 예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하는 호러비치의 동영상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실습은 내일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극단으로 가기 전에 그의 연주를 보았습니다. 아주 편안했습니다. 어떠한 의식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관객들도 그랬습니다. 마치 모두 잠들어버릴 것 같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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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4(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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