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의 연극 일기

  작성자   : 허승준 (anthro2001@hotmail.com) 추천: 447, 조회: 1406, 줄수: 5, 분류: Etc.
허승준의 연극일기 6
3월 25일. 5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습니다. 역에서 소극장까지 오는 길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집에서 정확히 30분 걸린다는 계산으로 나서면 열심히 뛰고 나서도 늦고 마는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 지각하던 버릇입니다. 도착하니 사라 씨와 한울이, 가람이가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물을 사러 슈퍼에 갔다가 골목 뒤편에 있는 집들이 예뻐서 잠깐 둘러보고 왔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저는 청소기를 돌리고 배우들은 걸레질을 했습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먼지가 많았습니다. 청소할 때마다 드는 의문이지만 이 먼지들은 어디서 날아오는 것일까요? 신기했습니다. 그때 가은 씨가 왔습니다. 나는 극장 배경이 왜 까만색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벽도 천장도 의자도 모두 까만색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다른 극장도 모두 까만색일까요? 가은 씨는 이것이 선생님의 뜻인데, 다른 극장도 그렇지는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까만색이 조명을 잘 받으니까 그런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에 다른 극장 배경은 어떤지 한번 눈 여겨 봐야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잊어버렸던 좋은 연기에 대해 가은 씨와 사라 씨에게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질문은 해님이에게 물어봐서 기억했는데, 대답은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먼저 자기 스스로가 즐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즐거워야 그 감정이 관객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의지를 가지고 연극을 보러 온 관객에게 배우가 해야 할 도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진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솔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연기'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TV에서 오랫동안 커피 광고를 한 안성기 씨 인터뷰를 보았는데, 그는 자신의 이미지와 결합되면서 그것이 광고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생활처럼 보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가은 씨는 여기에는 분명한 선이 없기 때문에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 선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찾아가는 과정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연극을 보러 오라고 재작년에 같이 워크캠프 코디네이터를 했던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조명과 음향을 담당하시는 이희즙 선생님께서 편찮으셔서 원래 공연인 거울인형에서 기억해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계획이 변경되자 한울이와 가람이는 의상을 챙기러 집에 가고, 가은 씨와 가람 씨는 공연을 준비하였습니다. 저는 7시에 맞춰 친구들을 데리러 갔습니다. 친구들에게 연극을 보러 오라고 했지만, 어떤 연극이고 어떻게 이 연극을 보게 됐는지 설명하기가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 중에 한 친구가 인터넷에서 기사를 찾아 읽고 이미 한얼 연극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주 극단에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만 덧붙여주었습니다. 친구들은 연극이 아니라 아리따운 딸들 때문이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흘겼지만요.
연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처음보다 조금 편한 마음으로 연극을 보았습니다. 더 많이 웃고 지난번과 다른 느낌을 찾기도 하면서요. 배우들도 지난주에 연습했던 것처럼 조금 더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관객들도 배우들과 호흡하며 즐겁게 감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과 관객이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언극을 하시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이건동 선생님께서는 말의 공허함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감하였습니다. 일상에서 공허하기 때문에 말을 하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더 깊어지는 공허함에 불쾌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글로써 말을 대신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글은 말과 달리 쓰면 쓸수록 더 가득 차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갖고 정리할 수 있고 뜻도 훨씬 더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고요. 물론 글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머리로 쓴 글은 머리가 아프고 마음으로 쓴 글은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죠. 하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마음과 통한다는 것보다 더 큰 보람이 있을까요? 이 보람을 위해서 기꺼이 마음 아프게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이제 행복하시겠다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제 문득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는 말씀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역시 공감하였습니다. 저는 성직자를 제외하고는 현실 속에서 항상 행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도 생활인으로서 행복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물론 깨닫는 바는 얕겠지만 이것이 우리의 실제이니까요.
이전: 허승준의 연극일기 7
다음: 허승준의 연극일기 5
2006/04/01(13:29)
CrazyWWWBoard 2000

Vote Reply Modify Delete Forward Prev Next Post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