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의 연극 일기

  작성자   : 허승준 (anthro2001@hotmail.com) 추천: 435, 조회: 1468, 줄수: 5, 분류: Etc.
허승준의 연극일기 4
한주가 지나 3월18일 5시에 극단으로 가려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서둘러서 온다는 것이 차를 타고 오다가 그만 길이 막혀 제시간에 가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첫 수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하는 수없이 중간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뛰어갔지만 결국 늦고 말았습니다. 죄송한 마음으로 극단에 들어서자 배우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마치 어제 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7시 반 공연을 위해 먼저 청소를 하였습니다. 저는 주말에만 극단을 사용하시는 줄 알았는데, 주중에도 공연이나 연습을 하셨는지 여러 가지 소품이 나와 있었습니다. 저는 배우들을 가볍게 도와주는 시늉을 하면서 무대의 느낌에 젖어보았습니다. 까만 배경 속에 진하게 비치는 조명을 받으면 그 순간만큼은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아프고 외로운 것이고요.
이건동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난주에 말씀하신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배우수업’에 대해 저의 생각을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우선 그 책에서 말하는 ‘진실’이라는 주제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사실 연기라는 것이 실제와 가장 가깝기를 지향한다면, 그 끝은 결국 진실과 얼마나 합치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제에 쉽게 접근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대로 어렵지 않게 읽혀졌으나 내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이런 생각에 선생님께서는 오역에 의한 오해가 있고 틀에 갇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볍게 받아들이라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가은 씨와 사라 씨는 몸을 풀면서 공연 준비를 하고, 한울이, 가람이 해님이와 저는 관객을 맞이하러 나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편하고 즐거웠습니다. 가끔 아이들과 제가 눈높이를 맞춰 서로 이야기가 통할 때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아, 나도 아직 살아있구나 라고 자위(自衛)하면서 말이죠. 하하하
다시 무대로 내려가자 선생님께서 몸을 풀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 먼저 무언극의 특성상 말 대신 표정과 동작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몸을 자신의 생각대로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라고 가은 씨가 대답하였습니다. 또 사라 씨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고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여서 말하였습니다. '몸이 만드는 정신'과 '정신을 이끄는 몸'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전자에 대해서 가수 박진영은, "내 자신감의 원천은 '몸'"이라고 말했습니다. 건강한 몸이 자신의 활동에 근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활동하지 않는 지금도 매일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자원활동을 할 때, 이를 위해서 많은 교육을 받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신과 달리 몸이 적응하는데 일정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이를 머리로만 이해하고 몸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해 한동안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후자는 공부하거나 글을 쓸 때 자주 깨닫습니다. 처음에는 책상에 앉아도 집중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시간을 갖고 책을 읽거나 자판을 두드리면 어느 순간 집중이 되기 시작합니다. 아마 연기에서도 몸을 풀면서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혼잡한 대학로 거리를 사람들을 지나치며 걷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려보았습니다. 마치 사람들과 내가 같은 공간에 존재하면서 떨어져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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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3(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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