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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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옮긴글 추천: 60, 수정: 1, 조회: 414, 줄수: 41, 분류: Etc.
“제국주의 신학에 항거하는 날: 종려주일”
종려주일 설교 (2011년 4월 17일)
본문:  마태복음서 21:1-4, 6-11
최성철 목사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가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을 남겨두고 예루살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올리브산 근처 벳파게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몇 일 뒤에 예수는 예루살렘 도성으로 해방의 축제 즉 유월절의 축제에 참석하는 유대인들의 행렬에 가담했습니다.  유월절 축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이집트 제국의 바로왕의 치하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자유인으로 해방시킨 것을 기념하는 민족의 절기입니다.  마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가 예수살렘 성 안으로 들어 가자 온 시민이 환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태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군중들이 집결하는 거창한 행진을 실제로 있었던 사건으로 보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는 예루살렘 시민들이 새로운 메시야의 설교를 들으려고 벌떼처럼 몰려드는 장면을 묘사하기는 했지만,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문자들 뒤에 숨겨져 있습니다.  당시에 로마제국의 치하에서 황제가 주님(Lord)이고 하느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며 신성(divinity)을 지닌 메시아인데 또 다른 메시아가 등장해서 대대적인 환영의 물결을 이룬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고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목숨을 걸고 이러한 대행진을 감행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로마제국의 신학과 불의와 폭력에 항거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외국의 어떤 도시에 입성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의 도시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의 하느님이 계신 성전이 있고, 그 성전 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인 법궤를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유대교 신앙의 중심지이며 성지였습니다.  그러나 이 성지가 로마제국에 의해서 점령당했고, 왕족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제국의 시녀들이 되어 백성들을 착취하고 탄압하는 일에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는 유대 민족의 고유한 정신과 문화와 신앙을 되찾기 위해서 로마제국과 제국의 시녀노릇하는 헤롯왕조와 제국주의 신학의 종교 지도자들에 항거하는 하나의 비유이며,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참조:  ‘The Last Week’, Borg & Crossan. 2006, p.5)

이 이야기는 예수가 실제로 유월절 축제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기존의 가치관과 신학과 신앙과 제도에 대한 정면도전이며, 개혁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군중들의 환호성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을 기억나게 합니다.  100여전 전 한반도에서 일제치하가 시작되던 때에 민중들은 고종황제의 장례식을 핑게로 일본경찰들의 눈을 피해 한양 도성으로 은밀하게 집결하기 시작했고, 일본의 제국주의에 항거하여 자유와 권리를 되찾는 해방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한민족은 수 천 년 동안 외세의 침략을 수없이 받아왔습니다.  중국과 몽고와 일본의 침략 때마다 민족의 얼과 문화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민중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적으로 자신들의 존엄성을 지켰습니다.

또 한가지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은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을 때에 미국과 일본은 극동 아시아에서의 식민지화에 대한 비밀 협정(카추라 협정, 1912년)을 맺었으며, 일본은 미국의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식민지인 한반도에 들어와 선교활동하는 것을 묵인했습니다.  

미국은 건국 때부터 고대 로마제국을 모방하여 공화국을 설립했고, 미국 의회는 로마의 원로원(Senate)을 흉내내어 상원을 만들었습니다.  기독교 국가라고 자칭하는 미국은 조직적으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듯이 예수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로마제국에 항거하다가 제국의 형법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는데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기독교는 제국주의 신학을 신봉하여 노예제도와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합리화했습니다.  제국주의 신학은 인간을 차별하여 백인과 기독교인은 일등 시민이고 다른 인종과 종교는 야만인으로 정죄하여 이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는 것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지상최대의 선교라는 잘못된 믿음에 광신적이었습니다. (참조: ‘예수와 제국’(Jesus and Empire), Richard Horsley, 2003)

이러한 미국 남부의 제국주의 신학의 선교사들이 한반도에 들어오면서부터 한국 기독교는 지금까지 한민족의 고유한 정체성과 정신과 문화와 고유한 종교들인 불교와 유교와 천도교는 비천하고 악마의 것들이며, 오직 기독교 만이 구원의 길이고 정통이라는 억지주장을 거듭해 왔습니다.  10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건만 미국 남부 선교사들의 제국주의 신학에 오염된 한국 기독교는 새롭게 거듭날 줄을 모르고 더욱 근본주의로 빠져들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지켜왔던 신앙이 새롭게 변화하도록 도전받는 것이 대단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예수의 정신을 따르는 기독교는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변형(re-configuration)시키고,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종교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의 신앙은 배타적이고 폭력적이고 제국적인 옛 모습을 벗어 버리고 포용적이고 평화적이고 우주적인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예배는 우주의 자연세계와 온 인류와 조화를 이루어 사는 것이며,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따라 살면서 그리스도가 되고 하느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캄캄한 무덤 속에 있을 때에 밖에서 나오라고 저를 부르는 예수의 음성을 더욱 선명하게 듣고 눈을 뜨도록 도와주신 선생님(mentor)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예수의 진정한 제자들입니다.  그 분들은 저의 평생 선생님들로서 저에게 제국주의 신학과 예수의 정신이 어떻게 다른지를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셨고 무엇보다도 제국주의 신학이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파괴하면서 이 세상을 포기하고 하늘 위에 다른 세상으로 도피하려는 음모에 대해서 폭로했습니다.  그 분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로버트 펑크(Robert Funk),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 존 쉘비 스퐁(John Shelby Spong), 마커스 보그(Marcus Borg), 고든 카우프만(Gordon Kaufman), 브랜든 스캇(Brandon Scott), 일레인 패이절스(Elaine Pagels),  스티븐 패터슨(Stephen Patterson), 돈 큐핏(Don Cupitt), 매튜 폭스(Matthew Fox),  토마스 베리(Thomas Berry), 로이드 기링 (Lloyd Geering), 등 입니다.

임마누엘 예수공동체의 교우들은 이 분들의 책을 어느 것이든 적어도 한 두 권 쯤은 읽으셔야 합니다.(참조: www.yes24.com)  물론  우리는 이미 수요모임에서 마커스 보그와 도미닉 크로산의 책들을 읽고 공부했습니다.  또한 이 분들의 책들은 임마누엘 예수공동체의 필독서로 지정했습니다.  저의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기독교의 신앙은 나의 내면과 이 우주 속에 그리고 매일매일의 평범한 삶 속에 있는 창조성이신 하느님을 느끼면서 창조적이며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종려주일에 읽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는 기독교가 세계를 정복하는 승리의 행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배타적인 제국주의 신학과 이 신학의 시녀노릇을 하면서 물질적인 축복과 만사형통을 상업적으로 팔아먹는 종교 지도자들과 종교인들에게 하느님은 온 인류와 모든 생명들을 공평하게 사랑하고 있으니 이 세상을 온 인류가 존경받으며 공평하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개혁하라고 요청하는 비유의 이야기입니다.

저의 선생 스퐁은 말하기를, “종교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착한 사람에게 상주고, 악한 사람에게 벌주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사람들이 하느님이 함께 계신 것을 느끼도록 도와주고,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하느님의 힘과 희망과 용기가 끊임없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도록 마음을 열고 눈이 뜨여지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Spong, J. S. 1998. ‘Why Christianity must change or die. A bishop speaks to believers in exile.’  NY: New York. HarperSanFrancisco)

21세기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의 뒤를 따르는 행진의 목적은 교리와 정통을 주장하며 세계정복의 욕망에 빠져있는 제국주의 신학과 신앙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종려주일의 의미는 새로운 인식, 새로운 마음과 눈으로 기독교의 신학과 신앙을 솔직하게 성찰하는 것입니다.

오늘 기독교 교회들은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습니다.  전 세계의 기독교 교회는 물론 한국 교회들은 날이 갈수록 교인수가 더 늘어나기는 커녕 급속도로 줄어 들고 있으며 이에 따르는 재정적인 적자와 파산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제도적이고 교리적인 종교에 식상하여 비종교적인 영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에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반드시 윤리적인 책임과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들은 흐리멍텅하고 말이 되지 않는 말을 하기보다는 선명하고 상식적이고 사심없는 말을 해야 합니다.  21세기의 현대인들은 말이 되지 않는 말들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전문적인 목회자들이 상식을 벗어난 신앙과 믿음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위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제국주의 신학과 예수의 정신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부활주일 바로 직전인 종려주일은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우주적이고 포용적인 신앙, 건전한 신앙, 상식적인 신앙, 사심없는 신앙,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신앙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제국적이고 배타적인 신앙들에 항거하는 날입니다.  

기독교인들인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기 전에 이 한 주간 동안 그의 죽음과 부활의 성서 이야기가 종교와 인종과 문화를 넘어서서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게 평화와 정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깊이 묵상함으로써 뜻깊은 부활절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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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20:41) from 174.92.10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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