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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애고(無가碍故) 무유공포(無有恐怖)와 ‘그리스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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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입니다. 저자:이명권박사/미국 크리스천 헤럴드 편집장>
'마음에 걸림이 없기에 공포도 없다.’ 이는 <반야심경>의 공사상을 몸에 체득한 자가 누리는 대자유의 이상적 모습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크고 작은 갖가지 공포가 깃들기 마련이다. 공포는 무서움과 두려움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닥쳐오는 갑작스런 재난은 물론, 엄존하는 고통스런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공포가 없다’는 것은 무슨 말이며, 과연 그렇다면 무엇 때문인가? ‘무가애고’ 즉 마음에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 걸림, 곧 장애가 없다는 ‘심무가애’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마음에 걸리는 온갖 장애를 떠났다면 온갖 공포도 없어지는 것이 자명하다. 문제는 논리적으로는 그러한데 실제적으로도 그러한가 하는 것이다. 불교의 기본적 가르침은 논리적이다. 논리적이기에 실천적일 수도 있다. 논리와 실천 사이에 마음이 있다.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이 흔들리면 아무리 이론이 논리적이어도 실천이 불가능하다. 마음자리가 확실하고 요동이 없으면 이론은 실제가 된다. 참으로 마음이 공한 자리에 머물면 어떠한 두려움도 극복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른바 요지부동의 마음이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가능한 일이다. 진리를 수호하고자 순교를 각오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음에 흔들림 없이 순교 정신에 따라 살았다.
이는 사도 바울이 말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困苦)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赤身)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로마서 8:35).”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체험으로 죽음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점에 대해 바울은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9).”
바울에게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귀결된다. 그리스도에게서 표현 된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의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는 바울의 신앙 고백은 실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요한일서 4:18)”는 요한의 말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요한은 사랑과 두려움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4:18).” 바울과 요한의 진술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사랑과 두려움의 확연한 대비다. 사랑이 있는 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사랑이 없으면 두려움이 생긴다.
이 사실은 진리와 욕심의 대비와도 같다. 진리가 충만하면 욕심이 없어지지만 욕심이 없어지면 진리가 충만해 지는 것과도 같다. 사랑과 진리가 같은 맥락의 노선이라면 두려움과 욕심은 또 다른 선상의 노선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빛과 어둠의 대비와도 같다. 빛이 충만하면 어둠이 사라지지만, 어둠 속에는 빛도 없다. 사랑과 두려움이 공존 할 수 없듯이, 진리와 욕심이나 빛과 어둠 또한 공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심성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며 진리와 욕심도 공존하고 사랑과 두려움도 공존하는 듯 하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이 둘은 분리된다. 진리의 세계가 거짓의 세계와 공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바울이나 요한이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 것에 비해, <반야심경>에서는 오직 ‘마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랑’과 ‘마음’의 차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구분 짓는 차이점이다. 그리스도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제하고는 모든 논의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의 가교가 ‘사랑(아가페)’이다. 한편 불교 사상에서는 ‘마음’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불교 유식학(唯識學)에서는 ‘마음’이 전부라고도 할 정도다. 그런데 이 마음도 자기 혼자만의 독존하는 마음이 아니라, ‘공(空)’의 거울에 비쳐진 마음이다. 공에 대한 통찰이 없는 마음에는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가 내재 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사랑의 거울에 비쳐서 두려움을 극복하듯이, 보살은 공의 거울에 비친 투명한 마음으로 온갖 세상의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다.
‘무유공포’ 즉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참으로 자유의 사람이다. 마음에 걸림이 없는 자유의 사람은 일체의 ‘경계(境界)’에 걸리지 않는다. 스스로 경계를 짓고 차별하며 분별함으로써 끝내는 적대시 되고 때로는 원수가 되기도 한다. 마음에 생기는 차별과 경계심은 스스로 자기가 만들어 내는 경우일 뿐이다. 도둑이 안방에 침투하여 물건을 훔쳐가거나 강도짓을 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문을 걸어 잠그고 잔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예방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소한 두려움에서부터 실로 질병에 이르러 죽게 되는 두려움에 이르기까지 생활 속에서 두려움은 산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보살은 ‘걸림 없는 마음’을 통해 ‘공’을 통찰함으로써 슬픔과 분노와 좌절과 배신과 죽음 등의 온갖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공포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공포를 극복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 방법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 것이고, 보살은 공의 마음을 말한 것이다. 어느 것이 실효성이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각자의 신념처계에 따라 다른 것이지만, 하나님과 공(空)이 각각 인간의 마음을 비쳐 볼 수 있는 ‘절대의 거울’이라는 측면에서 그리스도교와 불교는 대화가 가능하다. 하나님은 ‘영원한 자기 비움’으로써 존재하며 공은 ‘비움’ 그 자체로 존재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듯이, 비움 속에 더 이상 두려움이 없다. 두려움이 없는 자유한 정신으로 ‘사랑하다 죽어버리자.’
<이명권박사/미국 크리스천 헤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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