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의 연극 일기

  작성자   : 허승준 (anthro2001@hotmail.com) 추천: 383, 조회: 1466, 줄수: 5, 분류: Etc.
허승준의 연극일기 2
집에서 나오기 바로 전까지 많이 망설였습니다. 내가 가서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하고 싶다는 뜻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러하니 사실 들을 말도 모호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안 되면 남은 작품인 '기억해봐'라도 보고 오자라는 심정으로 대학로로 갔습니다. 날씨는 일요일 늦은 오후답게 맑았고 이른 봄 햇살에 따뜻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망설이다 늦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뛰어갔습니다. 한얼에 도착하자 가족과 다른 분들이 마치 소풍온 것처럼 파라솔을 펴고 망중한을 즐기고 계셨습니다. 다행히 지난번에 연극을 보러 온 저의 얼굴을 기억하고 반겨주셨습니다. 제가 연극을 보기에는 너무 늦게 온 탓에, 이날은 연극 대신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관객이라고 하여도 혼자서 연극을 보기에는 부끄럽고 부담스러우니까요.
그날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연극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도 시절 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까지 말입니다. 저도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인류학을 전공하고 연극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있다고요. 겉멋이 아닌 생활로써 연극을 실천하는 한얼 극단으로서는, 제 말이 치기(稚氣)에 불과한 것이지만 귀엽게 봐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그 다음 주에 기억해봐를 먼저 보기로 약속하였습니다.
3월 11일 일요일에 친구랑 같이 연극을 보러 가고 싶은데, 마땅한 친구가 없었습니다. 물론 같이 연극 보러 가자고 하면 놀러가듯이 따라 나설 친구들은 있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아니니까 마냥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사정 이야기까지 하며 데리고 가기에는 제 자신이 아직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고등학교 때 같이 신문부 활동을 했던 친구를 몇 년 만에 만나 이야기하는데, 저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취향이 비슷해 이야기가 잘 통했는데, 그 친구도 예술의 전당에서 개설되던 연극수업을 들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비록 수강인원이 몇 명 없어 계속 폐강되기는 했지만요. 게다가 지금은 한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계시지만, 친구의 아버지는 대학 때 연극을 연출하셨고 직업으로서도 연출가를 모색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에 서로 맞장구를 치며 같이 만나 연극을 보러 소극장으로 갔습니다.
기억해봐는 앞서 봤던 '거울인형'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고뇌하는 이건동 선생님의 연기에 집중했으나, 나중에는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한울이와 가람이, 해님이의 연기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특히 여름을 나타내는 장(場)에서는, 아무 대사나 소리 없이도 마치 시원한 바다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과 재미나고 귀여운 연기 그 자체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 날리는 종이눈은 마치 진짜 눈처럼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처음의 고뇌에서 벗어난 듯 이건동 선생님의 독백으로 막이 내렸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일이 있는 친구는 먼저 가고 저는 남아 한얼 가족과 작품과 연기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쩌면 많은 관객 중의 한명에서 조금 더 가까이에 다가가서 하는 이야기라 많이 어색했습니다. 한얼 가족도 그랬겠지만요. 다음 공연을 위해 무대를 준비하였습니다. 종이눈을 치우고 천장에 액자를 달았습니다. 저도 거드는 척을 했고요. 그리고 밖으로 올라가 한울이와 가람이, 해님이와 함께 관객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날씨가 추워 건물 안에서 기다리면서 우리는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놀았습니다. 아이들이 제 이야기에 밝게 웃어주어 마음이 한결 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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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8(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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